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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을 알아보는 법Around Art 2021. 10. 26. 11:39
유럽의 낡은 골동품 가게에서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고 가정해보세요. 작가가 누군지 유추하기 위해 먼저 서명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것이고, 그려진 대상이 어떻게 묘사되었는 지를 살펴보면서 화풍이 서명된 작가의 것과 일치하는지 분석할 것입니다. 또한,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나 종이, 안료가 사용되던 시기를 작가의 활동 시기와 맞춰보는 방법이 있겠고요. 그 외에도 작품에 그려진 대상의 내용을 통해 특정 작가가 즐겨 그리던 소재인지, 그림 내 다양한 소재들이 특정 미술사조의 특징을 모순 없이 따르는 지를 판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의 정보와 내용의 일치를 통해 어느 정도까지 진위 여부를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품의 모든 요소가 제작과 관련된 정보를 드러내지만, 그중에서도 작품의 배경은 가장 간단하게 시대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에 그려진 제단화의 배경은 주로 금색입니다. 이는 금색이 영원을 나타내는 초월적인 성격을 드러낸다고 보았기 때문이예요.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제단화의 배경이 자연 풍경으로 바뀌었는데, 이때 묘사된 자연이 나타내는 것은 현세의 풍경이 아니라 예수님 재림 이후 새 하늘과 새 땅이고요. 17세기 이후부터는 건축의 내부 인테리어가 배경을 채우게 되는데, 이는 계몽주의 이후 인간의 이성에서 답을 찾기 시작한 사람들이 초월적 영원이나, 창조주가 빚은 자연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에서 온전함을 기대하기 시작한 것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골동품 상점에서 구입한 그림이 제단화이고, 묘사된 대상이 중세풍이라면 바탕색이 금색이어야 진품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게 아니라 건축물 인테리어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그 그림은 후대에 그려진 짝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유추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특히 기존의 가치가 아닌 새로운 시도와 혁신이 담긴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얀 반 에이크의<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유화를 사용하여 그려진 가장 오래된 그림 중 하나로, 당대에 제작된 회화 작품은 대부분 템페라를 사용해서 그려졌으니, 시대에 따른 안료를 고려해서는 작품의 연도와 쉽게 연결 짓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이 그림엔 화가의 서명이 벽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또한 당시 서명을 잘 남기지 않았던 당시의 전통을 고려했을 때 흔치 않은 일입니다. "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얀 반 에이크 이곳에 있었다. 1434년)라는 문구는 그림 밖 화가의 존재를 그림 위로 드러냅니다. 그 아래 그려진 동그란 거울 속엔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도 비추이는데, 20세기 초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이러한 화가의 모습을 결혼식의 증인 참석으로 보고, 이 그림 자체가 결혼을 증언하는 일종의 증명서라고 해석했습니다.
사실 이 작품엔 무엇보다 화가의 존재감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것이 있는데, 바로 볼록한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시선의 주체입니다. 얀 반 에이크가 1433년, 즉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기 1년 전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자화상을 들여다보세요. 화가의 오른쪽 눈의 눈동자의 시선이 정확히 중앙을 관통하고 있지요? 이 시선의 위치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에서 볼록 거울이 나타나는 곳과 동일합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가 정말로 증명하고 있는 것은, 초상화를 의뢰한 부부의 결혼식이 아닌 화가의 시선 그 자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맑고 분명한 눈동자가 바라보는 뚜렷한 시선이 관람객이 마주 보는 시선을 관통합니다. 얀 반 에이크는 유화를 발명한 화가로도 유명한데요, 그림의 완성도를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해 노력한 결과일 겁니다. 굳이 유추하지 않아도 바라봄과 동시에 그 시선에 조응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진위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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